우리가 경험한 몇 번의 경제위기는 은행의 부실로 부터 왔다.
은행의 시스템이 의심을 받고 금융위기로 발전하면서 은행 시스템이 망가지게 되었다.
금융위기가 곧 경제위기인 것이다.
경기는 불경기가 있고 경기 호황이 있는 사이클이 있다. 경제 위기는 10년에서 20년에 한번씩 왔다. 이 위기에 어떻게 대응하는가는 매우 중요하다. 이런 변동성과 위기에 어떤 결정을 하는가에 따라 큰 자산의 차이를 갖게 된다. 몇 달 사이에 멀쩡한 회사가 몰락 할 수 있고 자산 가격이 폭락 할 수 있다.
이런 경제 위기가 왔을때 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돌이켜 보면, 자산 가격이 떨어지면 누군가는 싸게 매입하는 시기이다. 그 이후에는 자산의 순위가 많이 바뀐다.
현대 경제의 심장인 은행이 의심받기 시작하면 경제위기와 금융 위기가 시작된다. 뱅크런(Bank-run)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모든 금융시스템은 파산할 수 밖에 없다. 은행의 거래 자체가 마비되고 은행이 쓰러지면 경제 시스템이 마비된다. 경제가 안좋아지면 은행에서 돈을 빌려간 사람들이 은행에 돈을 못 갚게 되고, 손실을 본 부실한 은행이 파산되는게 아닌가 하는 의심으로, 사람들이 돈을 빼기 시작하면 금융위기로 연결된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는 은행은 스스로 위기를 빠져나올 수 없다. 정부가 개입해서 상황을 정리해야하며 문제가 생긴 금융시스템을 모니터링하고 보완 하면서 금융 시장에 대한 신뢰를 만들어 왔다.
미분양 아파트가 문제가되는 것도 아파트 사업에 돈을 빌려준 수 많은 금융회사들이 대금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분양이 끝나야 은행은 대금을 받을 수 있다. 전국에 미분양이 많아지면 건설사도 망하고 은행도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하면 파산할 수 있는 상황이되기 때문이다.
심각한 부실로 은행이 망할 수도 있다는 소문이 돌게되면 비슷한 규모의 은행에서도 예금을 찾으려는 사람들로 몰리기 시작하고 뱅크런이 일어난다.
경제가 위기냐? 아니냐?의 구분은 은행에 보관된 내 돈이 안전하지 못하다고 생각되는가? 아니면 안전하다고 생각되는가?의 질문으로 판단할 수 있다.
은행의 시작은 금을 돈으로 만들어 사용하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금을 금화로 만들어 거래를 시작했으며 금화를 만들어 금을 보관하기 시작하였다. 진짜 금을 계속 들고 다니면 위험했기 때문에 금을 보관하면서 보관 증서를 발행하고 이 발행한 보관 증서가 시중에 금처럼 유통되기 시작된다. 보관증을 보여주고 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금을 거래하는 것 보다 보관증을 거래하는게 간편했기 때문이다. 은행은 사람들이 금을 맞기고 찾으러 오지 않는 것을 알게되고, 금이 없이도 보관증을 만들어 이자 놀이를 할 수 있었다. 은행에서 발행하는 증서는 많아지는데 실제 은행이 갖고있는 금의 양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금 보관증이 늘어나면서 거래가 많이 일어나고 소비가 일어나고 투자가 일어나게되었다. 모든 사람이 같은날 금 보관증을 찾으러오지 않는 이상은 이런 형태의 비지니스는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매우 수익률이 높은 장사였다.
이런 형태의 은행의 모습은 현대의 은행과 별반 다르지 않다.
2008년 9월 15일 미국의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를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Subprime Mortgage Crisis)라고 한다.
미국은 대부분 주급으로 급여를 받는다. 많은 미국의 근로자들도 여유돈을 갖고 살지는 않는다. 당시 미국의 서민들을 대상으로 주택담보대출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신용이 매우 낮은 사람들도 집을 살 수 있도록 무분별한 대출이 이루어졌다. 이 주택담보대출은 다시 한대모아서 금융공학이라는 멋진 이름 아래서 수백만장의 대출 계약서를 조합하여 매월 이자가 들어오는 이자 상품으로 만든다. 이런 파생금융 상품은 인기가 좋았다. 이자가 낮은 저금리 시대였고 이자를 많이 받을 수 있는 상품이었다. 수백만장의 계약서 중 당장 다음달에 만기인 이자를 받는 것은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리고 주택을 담보로 잡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계약에서 동시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주택을 담보로 잡고 있어 매우 안전한 투자처로 생각되었고 관련 상품이 판매가 된것이다.
이런 상품을 CDO(부채담보부증권)이라고 한다. 회사채나 금융회사의 대출채권 등을 한데 묶어 유동화시킨 신용파생상품인 것이다. 이런 상품의 특징은 연체율이 높아지면 가격이 떨어지고 연체율이 낮아지면 가격이 오른다. 여기에서 대출 계약서로 만든 CDO로 내기를 하는 파생상품까지 등장한다. 문제는 파생상품으로 만들어진 또다른 파생상품이 만들어지고, 그 파생상품을 기준으로하는 또 다른 파생상품을 만들어 판매되었다. 파생상품의 또다른 파생상품들은 매우 복잡하게 또 다른 파생상품으로 만들어졌다.
통계적으로 만기가 두 달 후인 모기지 채권이 있는데, 미국 전역으로 대출받은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문제가 생기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매우 안전한 투자처로 인식되었으며 이런 개념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상품이었다. 하지만 경제가 안좋아지고 실업률이 오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당시, 국제 유가도 많이 오르면서 미국에서 휘발유의 가격이 오르기 시작한다. 휘발유는 미국인들의 생필품에 속한다. 그 당시 배럴당 4달러가 넘어가면 사람들의 고정된 소득에서 휘발유와 생필품을 사고나면 남는 돈이 적어진다. 미국은 차량없이는 이동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일을하거나 학교에 가기위해서는 필수로 기름을 살 수밖에 없다.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서 물가도 오르고 금리가 오르기 시작한다. 금리가 오르기 시작하였고 서민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을 못 갚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을 일부 못 갚은 사람이 생길 수는 있지만, 미국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못 갚는 일이 생기는 것은 확율적으로 매우 불가능한 일이었다. 유가가 오르면서 미국 서민들의 경제 사정은 다 똑같았던 것이다. 유가가 오르면서 미국 서민들도 갖고 있는 돈의 양은 상대적으로 적어졌다.
손쉬운 대출 조건은 신용도가 낮은 서브프라임 계층에게까지 주택 담보 대출을 적극적으로 제공했다. 이 과정에서 소득 증빙이 부실하거나 초기 이자율이 매우 낮은 변동 금리 조건등의 위험함 대출 상품이 많이 판매되었다. 주택 가격은 지속적으로 상승했기 때문에 주택 가격이 계속 상승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서브프라임 차입자들은 초기 낮은 이자율로 대출을 받아 집값이 오르면 되팔아 이익을 얻거나, 재융자를 통해 높은 이자율 부담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2006년부터 미국의 주택 가격 상승세가 멈추고 하락하기 시작했다. 금리인상과 투기 수요 감소등의 이유가 있었지만 금리가 인상되면서 월상환 부담이 급격하게 증가하였고 집값 하락으로 집을 팔아도 대출금을 모두 갚을 수 없게 된 차입자들이 늘어났고, 늘어난 이자 부담을 감당하지 못하면서 채무 불이행이 급증하기 시작한다. 주택 압류 증가가는 주택 공급 과잉을 심화시켜 집값 하락을 더욱 부추기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부실채권이 점점 커지고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파생된 상품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누가 얼마의 금액으로 투자되고 부실금액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었다. 금융시스템에 불안을 느낀 사람들은 자신의 거래은행도 의심을 하기 시작하면서 은행에서 돈을 빼기 시작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파생된 상품들은 인출할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금융 위기로 번지기 시작한다. 이 금융위기는 세계 경제에 영향을 주었으며 많은 국가들에서 글로벌 금융 위기가 심화 되었다.
한국의 경우도 1997년 금융위기가 있었다. 외환에서 시작된 위기가 있었다.
환율이 안정적이어야 계획과 판단을 하는데 도움이 된다. 환율이 너무 많이 바뀌면 안정적인 경제를 운영하는데 부담이 된다. 한국은 1990년대 초반 환율을 고정시키는 고정 환율을 사용하였다. 1달러에 약 800원 정도였다. 당시에는 많은 나라들이 고정환율을 사용하였다. 1985년 플라자 합의를 통해 G5 국가 간에 일본의 엔저 유도를 합의했고, 이후 1995년에 역 플라자 합의를 진행한다.
1980년대 초에 일본은 전 세계에서 제일 수출을 많이하는 나라였다. 일본의 전자 제품을 필두로 미국과 세계에 인기가 좋았던 시기이다. 미국의 제품은 경쟁력이 없었으며 일본의 제품은 가격과 기능면에서 뛰어났기 때문에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미국은 일본과 서독, 영국, 프랑스를 포함한 G5 를 구성하여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환율 조정을 합의한다.
1980년 이후 10년동안 일본 엔화의 가치가 2배가 된다. 엔화의 가치가 올라가면서 수출이 힘들어진 일본은 10년 후인 1995년에 일본이 미국에 환율의 정상화를 요구한다. 미국의 채권을 일본에게 팔면서 엔화의 가치를 다시 낮추는 조건으로 합의한다. 1년만에 엔화의 가치가 36% 하락한다. 일본의 엔화의 가치가 내려갔는데 원화의 가치는 미국 달러에 연동해서 비슷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가격 경쟁력에서 우리나라의 수출은 상대적으로 둔화되었고 1997년 외환위기 직전의 한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계속 늘어났다. 수출이 줄어들면서 달러는 부족해졌다.
1990년대 초중반에 시작된 금융 개방으로 외환 거래를 자유화하는 정책을 시행한다. 외국의 자본이 한국 기업에게 자본을 빌려주거나 주식 투자를 할 수 있게되었다. 수출로 벌어들이는 외화는 부족하였지만 대신 투자로 들어온 외화로 부족하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당시 외환의 이자율도 국내보다 낮았기 때문에 많은 기업들이 달러를 빌려서 투자를 진행했었다. 당시 한국은 고정 환율로 환율 부담이 적었기 때문에 많은 기업이 외국에서 달러를 차입한다.
외환 위기의 발생은 한국의 수출이 둔화되고 경상수지도 적자인 상황에서 한국 경제는 외국 자본들에게 불안감을 주었다. 외국 투자 자본들은 한국이 망할 수도 있다는 우려에 한국에 투자하던 돈과 빌려주었던 돈을 다시 빼기 시작한다. 수출로 번 돈이 아닌 빌려온 돈이라 투자금이 빠지는 것은 순식간에 일어난다.
기업에서 외국 자본을 빌려사용했지만 사실은 국내 은행이 외국에서 달러를 빌려서 기업에 준 것으로 돈을 갚아야 할 의무는 은행이 갖고 있었다. 기업이 파산하면서 많은 은행들이 파산하고, 한국은행이 달러를 풀어서 지원하고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보유한 달러가 부족하면서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국가 부도란 말이 이때 등장한다. 한국이 달러를 만들어 낼 수 없었기 때문에 IMF의 달러를 빌리면서 많은 이행 조치를 감행한다. 외국 자본으로 은행이 넘어가고 기업이 넘어가며 이시기에 한국의 경제가 흔들렸다.
결국은 금융시스템, 즉 은행이 흔들리면 경제가 흔들리는 이유이다.
당시에는 은행이 망해도 예금을 어느 정도의 금액으로 보장해 준다는 법이 없었다. 예금보험공사도, 5천만 원 예금자보호제도도 없었다. 정부는 돌려주지 못한 예금의 빚을 갚아주기로 결정한다.
앞으로 비슷한 일이 벌어지게 되면 가능하면 우리는 그 신호를 빨리 깨닫기 위해, 과거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첫번째 신호는 금리이다. 대출이 점점 어려워지기 시작한다. 신용도가 높은 대기업이나 정부에게는 돈을 빌려주지만 신용도가 낮은 기업에게는 돈을 안 빌려주기 시작한다.
두번째는 환율이다. 한국에 돈을 빌려주거나 투자했던 외국자본은 투자금을 회수한다. 환율이 올랐다고 무조건 외환 위기는 아니지만 경제적 위기가 발생하고 환율이 오르기 시작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마지막으로 은행이 망한다는 이야기는 금융시스템의 신뢰가 무너졌다는 이야기이다. 금융시스템이 잘 작동하지 않으면 진짜 경제위기인 것이다.
진짜 경제위기는 금융의 불안정으로 부터 온다.
금융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많은 요인들이 있지만 정부가 조기에 시장에 신뢰를 줄 수 있는 금융 시스템을 잘 관리하고 있는지의 여부가 매우 중요하다. 시장의 신뢰를 주는 정부의 정책과 투자 여건의 개선은 경제에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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